Surrogates
중3인 아들녀석과 지난 여름 함께 보기로 했던 영화를 시간을 잘못 체크해서 아들에게 물먹은 후, 다시 벼르던 차에 녀석을 꼬실만한 적당한 프로가 눈에 띄었다. 엄마가 보고싶은 영화를 혼자 쭈그리고 봐야겠냐고 동행을 제의했더니 썩 내켜하지는 않지만 큰 반발은 없어 보였다. 녀석도 인터넷에서 영화정보를 보더니 싫지 않는 기색이었다.
학교파한 후 며칠 전 주문한 컴퓨터 케이스랑 쿨러를 교체한다고 방안 가득 컴퓨터부품들을 늘어놓고 빠져있기에 한 시간 전부터 출발을 재촉하고서도 겨우 상영직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는 와중에 진로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서로 다른 견해차이로 둘 다 삐져서 급기야 차안에는 침묵만 흘렀다. 그래, 띠불.. 영화나 보자.
써로게이트는 핸콕, 터미네이터3등을 감독한 바 있는 조나단 모스토우 감독 작품으로, 기존의 SF영화에서 등장하던 사이보그나 터미네이터등의 여태까지의 기계인간과는 좀 다른 차원의 로봇이 등장하다는 점에서는 참신한 면이 돋보였다. 기존의 기계인간들이 스스로의 지능을 가지고 결국 통제불능의 상태까지 치닫거나 독립적인 개체로서 인간을 위협할 수 있다면 써로게이트는 그런 면에서는 100%안전한 로봇인 셈이었다. 전자통신망을 통해 사용자가 접속하여 신호가 있어야만 살아있는 존재일 뿐, 신호없이는 그저 마네킨이나 다름없는 사물일 뿐이었다. 스스로의 지능없이 ID기판하나로 사용자의 신호를 받아서 사용자의 사고와 행동양식을 고스란히 실행함은 물론, 사용자대신 사회활동이나 경제활동, 심지어는 오락이나 쾌락까지 대신한다고 보면 되겠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써로게이트”의 사전적 의미인 “대리인, 대행자”라기보다는 사용자 그 자신이나 다름없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써로게이트에 대해 올라온 인터넷상의 영화정보를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대리, 대행자’등의 사전적 의미를 가진 <써로게이트Surrogates>는 한 과학자가 인간의 존엄성과기계의 무한한 능력을 결합하여 발명한 대리 로봇 즉 써로게이트를 통해 100% 안전한 삶을 영위하는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써로게이트가 공격을 당해 그 사용자가 죽음을 당하는 전대미문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서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궁에 빠진 살인 사건을 조사하던 <써로게이트>의 히어로 그리어(브루스 윌리스 분)는 피해자가 다름 아닌 써로게이트를 발명한 과학자의 아들임을 알게 되고, 전 인류를 절멸의 상태로 빠뜨릴 치명적 무기가 존재함을 깨닫는다.-
칸트박사가 써로게이트를 발명하게된 동기는 장애인과 같이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그 불편함에서 해방시키고자하는 순수한 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무슨 일이든지 세월이 지남에 따라 처음의 의도와 목적을 유지하기 힘들 듯이, 써로게이트도 상업화되고, 또 그 편리함 때문에 상용화되기 시작하면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게 되고, 결국은 온 도시가 써로게이트들로 채워지다시피하게 된다. 당연히 위험한 전쟁터 같은 곳은 가장 먼저 써로게이트로 채워졌을 것이고 실제 영화에서도 그 점이 잘 반영되어 있었다.
사용자는 집안에서 접속한 채 있기만 하면, 그의 대리인 써로게이트가 직장에 나아가 업무를 보고, 파티에 참석하고, 귀가하여 식사준비를 하는 등 말 그대로 사용자자신이 되어 모든 사회활동을 대신하는 세상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더 이상은 인간은 밖으로 나가 위험과 노동에 노출될 필요없이 안전한 집안에서 접속만 하면 모든 일이 해결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노화와 질병에서 해방된 써로게이트로 사용자 자신의 신체상황이나 연령에 상관없이 젊고 완벽한 몸으로 사회활동을 한다면 업무능률이나 효율도 자연 극대화되리라. 소비패턴도 현재와 같이 자기자신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써로게이트의 업그레이드나 성형등써로게이트 관련산업이 발전하게 된다. 써로게이트를 쇼핑하고 써로게이트를 꾸미고 업그레이드하고 하는 것을 보면서 지금 우리세계의 사이버공간을 연상하게 했다. 사이버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아바타를 고르고 꾸미는 그 가상의 과정이 3차원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같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비록 그들이 인간위에 군림한다거나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인간세계에서 배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고, 또 개체수로 본다고해도 이미 세계를 지배하고도 남을 만한 존재가 되어버리지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이렇게 써로게이트의 존재가 일상화된 세계에서 있을 수 없는 살인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그 동안 써로게이트를 통한 파괴나 상해에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사용자가 함께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망자는 놀랍게도 다름아닌 써로게이트를 발명한 칸트의 아들이었다. 영화를 보면 써로게이트가 현실 생활을 대리해주면서 온종일 누워있기만 하면 되는 인간은 과연 무엇인가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 갈등은 써로게이트의 아버지인 칸트에게도 예외일 수는 없었는가 보다. 그가 무엇 때문에 써로게이트의 존재를 완전히 없애버릴려는 막다른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그 동기설명이 아쉬웠지만, 그런 결심을 하게된 그는 이젠 거대 재벌이 되어버린 써로게이트제작회사 입장에서는 없애지 않으면 안 될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군사용 써로게이트 파괴목적으로 연구 제작되던 무기가 방어막을 뚫고 사용자까지 사망에 이르게 하는 오류가 생긴 후 연구는 중단되고 제작된 무기는 전량폐기되는 과정에서, 무기 하나가 빼돌려져 칸트를 과녁으로 발사된 것이 그의 써로게이트를 사용하던 아들을 죽여버리는 사건이 되고 만 것이다.
살인 청탁을 받은 하수인은 기계인간을 반대하는 인간집단거주 지역으로 도주하게되고, 그를 쫓는 그리어 써로게이트의 활약이 터미네이터3에서 봤던 액션을 연상하게 하여 조나단모스코우 감독답다는 생각을 하게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브루스윌리스다운 액션은 많이 아쉬운 편이었다. “드레드”로 명명된 인간집단으로 도망친 하수인은 드레드의 지도자 파웰의 손에 죽음을 맞고 무기는 인간집단의 지도자 파웰의 손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사실을 확인한 군관계자는 무기회수를 위해 드레드에 병력을 투입하고 파웰은 총격을 받아 쓰러지게되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집단의 지도자 파웰 역시 칸트가 사용하는 써로게이트였던 것이다.
칸트는 스스로도 써로게이트를 통해 일을 추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써로게이트와 접속된 인간은 더 이상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으며 전세계 써로게이트와 사용자 모두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계획을 추진중에 있었던 것이다. 모든 일을 마지막 실행단계만 남겨둔 채 칸트는 자살하게되고 인류를 구제해야할 절대절명의 미션은 온전히 그리어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어쩌면 칸트의 자살도 써로게이트에 접속된 자아를 인정할 수 없었는 것은 아닐까 의문이다. 칸트 자살 후 그리어는 칸트가 조종하던 옛 동료 피터스요원의 써로게이트를 통하여 접속된 모든 사용자를 구하고 갈등 끝에 써로게이트는 파괴한다는 당연한 해피엔딩으로 영화는 결말을 맞게 된다. 파괴명령이 수행된 후 거리를 활보하던 써로게이트들은 썩은 볏짚단처럼 픽픽쓰러지기도 하고, 달리던 차끼리 충돌하고 깨지고 엎어지고 난리지옥이 펼쳐지기도하지만 인간답게 살기위해 겪는 과정이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전달된 때문일까 그 상황을 보면서 끔찍하다는 생각없이 그저 덤덤하기만 했다.
써로게이트를 파괴할려는 칸트박사를 보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노벨이 연상된다. 분명 좋은 의도로 발명한 것이 살상용 무기로 쓰이는 것을 보면서 노벨도 할 수 있다면 다이너마이트를 없애고 싶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쥬라기 공원의 작가인 마이클크라이튼의 “델로스”라는 소설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거대 재벌은 고객에게 꿈의 휴양지를 제공하기 위해서, 고객이 원하는 환경에 필요한 모든 인력을 인간과 구분이 안될 정도의 정교한 로봇 맨드로이드를 통해 운영하는 델로스라는 휴양지 만들게 된다. 격리된 섬에서 그 맨드로이드를 통제하던 스텝진들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여성맨드로이드들을 성의 노리개로 삼게 된다. 그들의 필요에 따라 좀 더 높은 지능을 주게되는 과정에서, 결국 맨드로이드들이 스스로의 학습을 통해서 자아에 눈뜨게 되고 반란이 일어나 쥬라기공원과 같은 아비규환의 지옥이 펼쳐지는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와 같이 써로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기술과 인력이라면, 그들에게 독립된 개체로서의 인격과 지능을 갖게하는 기술도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테고, 소설 델로스와 같은 상황이 전개되지 않으란 법도 없으리라. 어쩌면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이라고 혹자는 비웃을지도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인류문명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가면서 발전하여 왔고 발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걸 누구도 반박하지 못하리라. 영화를 보면서 다른 기술적인 면들은 차치하고라도, 필요하다면 어떤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인류문명이라면 먼 후일에는 써로게이트 이상의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존재가 탄생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을 것이다. 부디 제어장치 없이 달리는 전차와 같은 인류문명이 긍정적인 방향의 발전으로 나아가길 바랄 뿐이다.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고자했던 메시지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눈부시게발전하는 과학기술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해야할지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영화가 끝나고 아들녀석은 툴툴거릴 때는 언제이고 나오면서 영화티켓을 달라고 한다. 어디다 쓸 것이냐고 물어도 그저 웃기만 하더니, 나중에야 자기도 블로깅 좀 하자며 사진만이라도 좀 찍고 돌려주겠다고 한다. 훗, 녀석이 영화를 보고 하고 싶은 말이 제법 있는가 보다. 건네받은 티켓을 보더니 또 엄마에 대한 구박이 시작이다. 카운트여직원이 아들까지 성인요금으로 받았던 것이다. 급하게 티켓팅하느라 모르고 있었다가 티켓을 보고서야 그제야 알았던 것이다. 분명 성인 한 명, 학생 한 명이라고 얘기했던 것 같은데, 아들 얘기론 내가 성인 둘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 적 없다고 얘기하다보니 카운트에서 성인둘이냐고 물었을 때, 내가 긍정했단다. 에잇, 왜 성인은 빠뜨리고 2명만 들렸을까? 생떼같은 내 돈 1000원! 어쩌랴, 너무 근사한 아들을 둔 잘못인걸.(너무 삭은 넘인가..)
그 와중에도 계속 엄만 당최 믿을 수가 없다며 궁시렁거리는 아들!
“짜슥아, 너도 늙어봐라.”